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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퍼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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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러운 초고역

음반을 반복해 듣다 보면, 그 녹음 현장의 공간 상황을 알아차리게 되는 때가 있다. 평소에 들리지 않았던 소리를 접하게 되거나, 뜻하지 않은 잡음을 듣게 되는 경우이다. 라이브 음인 경우, 천장의 높이에 따른 반사 음이나 객석에 앉은 관객이 내는 소리, 혹은 연주자의 위치를 드러내주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그것이 의도된 것인지 아니면 실수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음반은 시간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레코딩방식과 기술은 시대에 따라 계속 바뀐다. 지금은 보편화된 음질이지만, 초창기의 ECM 레이블은 다른 레이블들에 비해 더욱 맑고 투명한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ECM의 음반은 유럽 쪽에서 생산된 스피커들에서 더 투명한 음감이 살아난다. 탄노이를 제외한 대다수 유럽의 스피커들은 대형 콘지(스피커를 구성하는 중요한 부품)를 사용하지 않고 주로 소형 유닛을 사용하여 소규모의 정밀한 사운드를 추구하였기 때문이다. (스피커의 음은 상대적으로 저음이 많이 나면 고음이 감쇠된다.) 같은 시대 미국의 스피커들이 15인치 이상의 대형 콘지를 사용하여 스케일이 큰 공간감을 중시했다면, 유럽의 스피커들은 각각의 악기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음색의 디테일에 치중했다. 그래서 우리는 70-80년대의 오디오를 말할 때 흔히 아메리칸 사운드와 브리티시 사운드로 나누곤 한다. 하지만 현대의 진화된 오디오들에서는 그 경계가 없어지고 음의 깊이나 연주자의 위치를 정확히 재생해내는 것으로 하이파이(고음질의 오디오를 지칭하는 용어)로서의 실력을 가늠한다.
물론, 저역에서 고역에 이르는 전 대역의 밸런스는 기본이다.
현대의 스피커들은 8인치 이하의 콘지를 사용하면서도 초저역을 느낄 수 있을 만큼 기술이 발전하였고, 심지어 인간이 들을 수 없는 초고역의 주파수까지도 재생할 수 있도록 개발 되었다.

<키스 자렛 – 파리 콘서트>

인간이 들을 수 없는 주파수 즉, 초고역의 음을 자연스럽게 들려주는 음반으로 키스 자렛의 <파리 콘서트>를 소개한다. 피아노의 고음 잔향이 잘 녹아 들어 있는 음반이다.
ECM 레이블의 설립자 만프레드 아이허가 제작한 <쾰른 콘서트>에서 키스 자렛은 대단한 성공을 거둔다. 이 솔로 피아노 음반은 이전의 피아노 사운드와는 대조를 이루어, 중 저음의 디테일이 살아 있는 라이브 음을 들려주었다.
반면, 그 다음에 나온 <파리 콘서트>의 라이브 음은, 야외에 걸어 놓은 실크 원단이 나붓거리는 것을 연상시킬 만큼 미려한 터치와 고음의 잔향이 아름답게 살아 있는 음이다.
특히, 두 번째 ‘THE WIND’란 곡은 바람이 어디에서 와서 불고, 어디로 사라지는지 생각하게 하는 곡이다.
가야금으로 자연 이미지를 표현한 황병기 선생의 ‘비’(음반 <숲>에 수록)라는 대단한 곡이 있는데, 이 곡도 바람의 이미지를 피아노 음에 실어 허공에 날리고 있다. 마치, 언덕 위에서 내가 거기에 있음을 알게 해주는, 두 귀 사이로 스쳐 지나가는 바람을 느끼도록 하는 곡이다. 이러한 느낌은 30KHz이상의 고역이 평탄한 주파수로 자연스럽게 재생될 때 느껴지게 된다. (인간이 귀로 들을 수 있는 고역의 한계는 20KHz이다.) 그 이상, 100KHz에 이르는 초고역의 음은 실제의 바람처럼 소리가 아닌 질감으로 느껴질 것이다.
일반적인 스피커는 20KHz이상이 되면, 제대로 재생을 하지 못하고 음이 세게 들려서 귀를 피곤하게 한다.
아마도 볼륨을 지나치게 세게 올렸을 때 피아노의 고음이 찢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음반의 첫 곡 ‘October 17, 1988’의 음은, 38분23초 동안의 몰입에 몸의 마디가 모두 이완되는 듯한 음이다.
그 다음 곡 ‘The Wind’까지 듣고 나서 이미지를 상상해 보면 이렇다.

하늘에 떠 있는 무겁지 않은 구름,
무성하지 않은 들풀,
동쪽 언덕에 그렁그렁한 나무들,
넓은 시야에 들어오는 추수를 끝낸 들판,
언뜻 보이는 몇 마리의 잠자리,
구름 사이로 닿을 것 같은 햇살의 따뜻함,
멀리 지나가는 비행기.
잠시 아무 소리가 나지 않는 공허함,
그리고 귀 사이로 많은 이야기를 전하고 지나가는 바람…….

마지막 곡 ‘Blues’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집으로 향하게 한다. 곡들 중간에 관객의 잡음소리가 들리지만, 그것이 바로 라이브이다.
여러분들이 혹시 제대로된 오디오로 이 음반을 들을 수 있다면, 바람이 자신의 주위를 돌아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러브 어페어 O.S.T>

삼류 신파극처럼 아름다운 결말을 가진 영화

<러브 어페어>의 O.S.T 음반이다. 이 음반은 엔니오 모리꼬네의 작품이다.
엔니오 모리꼬네가 음악을 맡은 영화에는 아련한 사랑의 영상이 많이 연출되는데, 의 ‘Playing Love’(녹음 중 창문 너머의 역광에 비친 여인을 보는 장면)라든지 의 ‘드보라 테마’(드보라를 몰래 쳐다 보는 장면)와 같은 곡이 그러하다. 에서는 9번째 트랙에 있는 ‘Piano Solo’가 같은 맥락에 있는 곡이다.
캐서린 햅번이 피아노를 치고 아네트 베닝은 허밍을 한다. 불타오르는 눈빛으로 워런 비티가 아네트 베닝을 응시한다. 바로 이 명장면에서 ‘Piano Solo’가 흐른다.
다른 음반들에서도 가끔 있는 일이지만, 이 곡의 음을 자세히 들어보면, 아네트 베닝의 허밍부분에서 ‘화이트 노이즈’(라디오의 주파수가 맞지 않을 때 나는 것과 같은 소음)가 들린다. 이것은 더빙된 것이 확실한 곡이다. 아마도 녹음상의 어떤 실수로 이러한 노이즈가 유입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화이트 노이즈는 성능이 떨어지는 스피커에서는 잘 들리지 않는다. 고역의 영역에 화이트 노이즈가 끼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스피커를 튜닝할 때 이 화이트 노이즈가 잘 들리는지 안들리는지를 가지고 고역 재생 여부를 확인해보곤 했다.
그런데, 지금의 내 생각은 다르다. 스피커가 꼭 초고역을 표현해야만 한다는 편견을 버리게 된 것이다.
이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 그런데 세상에는 옳고 그른 것이 그렇게 확실할까? 요즈음, 나는 극도로 자신을 내몰아서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음을 너무 분해해서 듣지 말고 음악을 편안히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 곡 ‘Piano Solo’를 들을 때 그 아름다운 영화의 장면을 떠올린다면 굳이 하이파이 오디오가 아니어도 좋은 음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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