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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퍼 08′ 차가운 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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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어떤 향, 맛, 감촉, 소리의 이미지들이 아름다운 음악과 매치되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어머니의 품’ 같은 음을 느낄 때도 있고, 뜨거운 열정의 음 중에서 한순간 차가운 음을 느끼기도 한다.

길을 걷다가, 이 무더위에 ‘별’표 ‘솜’이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혜화역에서 창덕궁 방향 어느 뒷골목에 그 오래된 간판의 솜틀집이 있다.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지만, 솜은 겨울의 추위를 견뎌내게 하던 좋은 재료다. 한편, 솜이불은 지도, 키, 소금같은 단어들을 연상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어린시절, 솜틀 집에서 날리는 먼지가 태양 햇살에 반사되면서 공기의 흐름이 읽혀져서 매우 신기했던 기억도 있다. 나는 ‘솜’을 통해 공기가 움직인다는 것을 알았다.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오전 11시, 온도는 32℃인 더운 날씨에 ‘솜’의 이미지와 함께 나는 ‘존 콜트레인’의 음악을 떠올렸다. 숨막히는 ‘하드 밥’과 ‘프리 재즈’를 열광적으로 들어본 사람이라면 내 말에 공감할 지도 모르겠다.

1960년대의 재즈 음은 천연 솜이불을 뒤집어 쓰고 홍역을 치를 때의 아이처럼, 숨막히는 음이다. 당시 뮤지션들의 흑백 사진을 보면, 땀으로 범벅이 된 현장의 열기를 짐작할 수 있다.

존 콜트레인의 음반 중에 가장 쉽게 들을 수 있는, 가장 느린 템포의 음반인 <발라드> 디럭스 버전 음반을 소개해 본다.
존 콜트레인의 1962년작인 ‘Ballads’는 전성기의 대가들이 대거 참여한 음반이다.
피아노에 맥코이 타이너(McCoy Tyner), 베이스에 지미 개리슨(Jimmy Garrison), 드럼에 엘빈 존스(Elvin Jones)가 호흡을 맞추고 있다. 이 디럭스 음반은 맥코이 타이너와 듀엣으로 연주된 곡과 기존 발라드 음반에 같은 곡을 여러 느낌과 시간으로 재구성한 곡도 있다.
그 중 ‘It’s Easy To Remember’란 곡은 7번이나 반복해 연주했는데, 그렇게 같은 음을 여러가지 느낌으로 표현한 것 중에서 가장 좋은 음을 메인에 실었다. 기존 앨범들에는 없는 아름다운 느낌으로 정제되어 발표된 음반임을 알 수 있는 귀중본이다.

앨범에 참여한 연주자들은 어느 누구도 가늠할 수 없는 쟁쟁한 실력파들이지만, 개인적으로 ‘앨빈 존스’의 드럼 연주가 마음에 든다. 그의 연주는 신기에 가깝다. ‘앨빈 존스’의 드럼은 베이스와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도 밀착된 음으로 밸런스를 유지한다. 문득, ‘토미 플라니겐’의 ‘Maybe September’의 환상적인 드럼 음이 생각난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고도의 스틱 테크닉을 구사하여 음 하나마다 최고의 리듬감이 읽혀진다.
‘It’s Easy To Remember’를 계속해서 듣다 보면, ‘짐노페디’처럼 우울증에 휩싸일지 모르겠지만, 연주들 간의 미묘한 차이를 쫓다보면 그 섬세한 악상 처리와 호흡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섹서폰의 니들에 호흡을 뱉는 느낌이 전혀 다르고, 피아노 연주의 터치감도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 본 음반에 실린 여러 버전의 연주 음 중에서 굳이 어느 것이 좋은가를 찾으라고 하면, 단연, 메인에 실린 음이다.그 이유는 이것이 노련미에서 얻은, 트릭이 없는 정연한 연주이기 때문이다. 애써 애드리브를 자제하면서 세련된 음으로 주욱 쭉 밀고 나간다. 그것은 듣는 이의 느낌을 배제하고, 오직 몰입된 연주자들의 이미지 전개만을 따르게 함으로써 평온하게 청취자를 몰입하도록 만든다. 표현하자면, 비가 그친 후, 작은 물웅덩이에 반사되는 네온 빛의 깨끗함이다. 지나간 좋았던 시절을 회상할 수 있는 여유다.

우리는 순수하게 음악을 듣지 못하고, ‘이 정도는 알고 들어야지’ 하는 오류에 빠지곤 한다. 나도 그러한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 애쓴다. 이 글을 연재하면서 항상 망설이는 부분도 이런 점이다. 물론, 어느 것이든 한가지 일을 오래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많이 알게 되는 것들이 있지만, 음악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듣든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이러한 지식들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음악에 대해 백과사전처럼 말한다고 해서 음악을 제대로 이해한 것은 아니다. 음악은 지식으로, 머리로 듣는 것이 아니다.

소리 중에 무한 감동을 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연의 소리’일 것이다. 대숲의 바람소리, 그 많은 동식물들이 나눈 대화를 엿듣는 것은 최고의 감동이다. 뮤지션과 프로듀서들은 소리를 만드는 일을 하지만, 나는 그 음을 그대로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여러 가지 스피커를 통해서 듣고, 또 그 음을 기억하고, 라이브 공연에서의 음과 비교하고, 또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와 정리하고, 다시 반복해 듣는다. 때로는 오디오의 케이블을 바꿔보기도 하고, 온갖 종류의 앰프를 조합해보기도 한다. 더 좋은 음을 찾는다기보다는 현장에서의 음과 일치되는 음을 찾고,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앨범의 음은 솜과 같고, 여러 버전의 ‘It’s Easy To Remember’는 비 내리는 깊은 밤, 아무도 없는 재즈바의 느낌이 그대로 되살아나는 음이다. 그 음은 형언할 수 없는 고독과, 돌아 갈 수 없는 시간 속 오래된 사진을 꺼내 보는 혼자만의 시간을 동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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