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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provis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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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provisation

오늘날 음악은 고유한 라이프 스타일이 되어 인간에게 꼭 필요한 물과도 같이 생활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음악의 대중화는 많은 장르들을 잉태시켰고, 또 세분화되었지만, 언제나 변하지 않는 것은 음악의 감성 그 자체이다.
음악이 가지고 있는 순수성과 예술성의 차원에서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가장 심미적인 부분을 꼽는다면 아마도 ‘임프로비제이션 improvisation’(클래식음악에서 즉흥적인 솔로연주를 뜻한다)이 아닐까 싶다. 형식적으로 말하자면 ‘카덴자cadenza’가 될 것이다.

최근에 ‘ECM전시회 & 만프레드 아이허 음악감상회’의 오프닝에 참석한 일이 있었다. 간단한 전시회 소개가 있은 후 재즈 피아니스트 ‘아론 팍스’의 연주를 들을 수 있었는데, 지하 4층의 넓게 개방된 공간 안에서 울리는 그랜드피아노의 건실하고 명징한 음이 참 좋았다.
음악에 몰입된 연주자의 즉흥적인 터치감은 그 공간에 모인 사람들의 몸에 흡수되기도 하고 전시장의 벽에 난반사 되기도 하면서 감성을 깊게 두드리는 울림이 되었다.

흔히 비 오는 날에 음악이 더 좋게 들린다고 한다. 공기 중의 수분이 밀도를 높이게 되어 소리의 진동을 확대시키기 때문이다. 참고로, 소리는 물속에서 5배로 증폭된다. 반면, 진공상태에서는 소리가 전달되지 않는다.
날씨나 듣는 시간 등에 따라 모두 음악이 다르게 들리겠지만, 비라는 매개체는 특별하다. 비는 언제나 내게 ‘임프로비제이션’란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비오는 날 듣는 음악에 대해 얘기한 김에 ‘Rain’과 관련된 음악들을 소개해본다.

‘리 오스카(Lee Oskar)’의 ‘Before the Rain’을 기우제 삼아 음반 앞에서 서성거린다. 잊었던 곡들을 찾다보면, 제목은 생각나지 않고 어느 음반의 몇 번째 트랙인지가 더 잘 떠올라서 그 기억을 따라 음악을 선곡하게 되곤 하는데, 그렇게 음악을 듣다보면 빛바랜 앨범을 통해서 오랜 친구를 발견하는 듯한 생각이 들면서 미소를 짓게 된다.

나이 지긋이 먹은 선배가 오면, 호세 펠리치아노(Jose Feliciano)의 ‘Rain’을 들려 준다. 아마도 중년이 넘은 그들에게 ‘호세 펠리치아노’는 어색한 4도 인쇄로 되어 있는 LP판으로 듣는 것이 제맛일 것이다. 나도 그렇게 70-80년대를 보냈다. 왜 갑자기 극장 판과 영화포스터가 떠 오르는 것일까?

덥고 다습한 날씨에 바람이 멎게 되면, 이제 빗물이 처마끝에 모여 떨어진다. ‘프린스 (prince)’의 ‘purple rain’을 들어야 할 때다. 프린스는 ‘마이클 잭슨’, ‘마일즈 데이비스’, ‘지미 핸드릭스’ 등과 마찬가지로, 백인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 새로운 음악 장르를 개척한 뮤지션이다. 외설 문제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의 음악적 창조성은 대단하다.

오전부터 계속해서 비가 오게 되면 아예 일을 접고, ‘유라이어 힙(Uriah Heep)’의 ‘Rain’을 들으며 음악에 빠진다.
1972년에 발표된 이 음악은 보컬 멤버 ‘데이비드 바이런’의 음이다. 그는 과다한 음주로 인해 76년 ‘유라이어 힙’에서 쫒겨났고, 80년에 재가입을 요청 받았지만, 끝내 거절했다. 그리고 1985년에 사망한다. 이후 발표된 여러 버전이 있지만, 그가 남긴 ‘Rain’의 음이야 말로 사랑의 고독을 잘 아는 듯한 음이다.

사실 내가 가장 꼽는 ‘Rain’음악은 ‘마틴 스테판슨(Martin Stephenson)’의 ‘Rain’이다. 스테판슨은 영국 출신의 가수로, 늘 짧은 창의 모자를 쓰고 작은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한다. 그의 음은 흡음제 하나 없는 콘크리트 지하 방에서 울리는 음과 같다. 기타의 잔향이 정말 인상적이다. 1986년에 발표된 곡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아 자료가 거의 없지만,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싶은 시간에 들을만한 곡이다.

클래식 음악으로는 ‘리찌(RUGGIERO RICCI)’의 ‘지고르네르바이젠 OP.25’을 꼽고 싶다. 리찌의 음은 광풍과도 같고, 정교한 슈퍼컴퓨터의 연산 속도를 떠올리게도 한다. 매우 분석적이면서 동시에 높은 기량이 없으면 절대 연주할 수 없는 곡이다. 이 곡은 19세기 스페인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파블로 사라사테’에 의해 작곡되었는데, ‘지고이네르바이젠’이란 제목은 ‘집시의 노래’라는 뜻이다. 형식적으로는 집시 음악의 한 유형인 ‘차르다시’를 따르고 있는데, 카덴자 부분은 더할 수 없이 강렬하다. 곡의 중반에선 대사없는 ‘찰리 채플린’의 애절한 표정이 연상되고, 빠른 연주 부분에서는 먹구름이 토해내는 빗줄기가 연상된다. 특유의 강약과 템포로 숨쉴 수 없는 감동을 만들어내는 명곡 중의 명곡이다.

이제 비가 오면 청승 떠는 젊은 시절이 끝나고 음 자체에 몸을 싣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많은 시간을 반복해 음을 들어왔지만, 시간을 넘어 뮤지션들이 갖추고 있는 음악성과 천재성에 매번 감탄을 하게 된다. 미묘한 엇박자도 용납하지 않는, 수초를 분해해내는 능력의 ‘Improvisation’은 천재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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