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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엔드.

 

지난 시절 하이엔드란 말을 자주 사용하여 왔다.
오디오에서 하이엔드는 ‘자유의 음’을 뜻하는 말이 내포되어 있다.
모든 물질에서 ‘문화’를 찾고자하는 개인 감성의 극도를 뜻하는 하이엔드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부와 일치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하이엔드는 이성적인 것과 감성적인 것이 충돌하여 또 하나의 이미지를 하나로 만들어 수반하는 고도의 세계인 것이다.
좋은 그림을 감상한다는 것이 단지 아름다움을 위한 것도 있겠으나, 나의 경우에는 차원이 높은 많은 에너지와 영감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지난 과거에 ‘도널드 져드’의 작품으로 많은 사고와 지식을 얻은 시절이 있었다. 한 작가의 작품을 보고 인생을 새롭게 관찰하고, 물질이 가질 수 있는 물성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그의 생전 모습을 지인에게 들었을 때에도 작업과 삶이 하나 되는 모습과 죽음에 이르러서도 태도가 같았다고 전한다. 그의 친구 ‘타미리 존스’의 연기를 보면 정갈하고, 스틸로 지나가는 눈빛에서도 많은 단어가 연출되지만 간단한 단어로 내용을 전하고 있지 않는가? 또한, 디자이너 ‘켈빈 클라인’의 매장가구와 심플한 옷들, 로고는 그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물체가 주는 ‘사고’를 모르고 ‘문화’를 이야기 한다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가?

하이파이에서도 하이엔드를 추구하는 것은 단지 음악을 듣는 것만은 아니다.
음 이외에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오감과 정신적 만족을 통하여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숨이 막혀 버릴 것 같은 리듬, 볼륨의 촉감, 시야에 들어오는 뷰, 음의 맛, 뇌 속에 그려지는 포도주의 향기…… 여기에 더하여, 본인이 추구하는 세련된 음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정신적 자아의 세계를 추구하는 음으로, 극명하게 빠져들게 하는 도구로 되는 것이다. 그러나 도구는 도구일 뿐, 인간이 죽음 앞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도구로서 밖에는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과정은 인간으로서의 갖추어야 할 감동적인 요소를 극대화하여 새로운 영역을 추구하고 공존하는데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음악을 많이 안다는 유별난 사람들을 종종 보지만, 그들이 모르는 곡을 물어보면 난감해 한다. 나의 말이 멈추는 순간이다. 음악은 단지 알아가는  삶의 과정이고, 창피는 그 다음부터의 개인의 일이다. 나에게 있어서도 수천 곡을 애용하지만, 몇 곡만이 유일하게 오래도록 정감이 간다.
현대에 살고 있는 나는 실시간으로 현대의 음으로 표현하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현대 음을 멋지게 드라이브 할 수 있는 음으로 표현하기를 원한다.
음악을 알아가는 것은 자아를 실현하는 도구 중에서 좋은 작품을 보는 것과도 같이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교양을 외부의 태도로부터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양은 그가 알고 있는 안목에서 출발한다. 단지 가격에서 오는 오디오의 질이란 위험한 판단이며, 싸고 좋다는 말은 이 범주 내에 들지 않는다.
‘문화’를 만드는 것은 책임이 따르고, 개인의 힘이 모여 사회를 이룬다. 교양을 모르고 어떻게 문화를 할 수 있으며, 자기의 그늘에 가린 자가 어떻게 창작을 할 수 있을까?
어떠한 것이든 해보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을 찾아가다 보면 시간이 다 된 것이다.
나는 소규모의 라디오에서 떼어 낸 유닛의 자석으로 놀던 유년기를 떠올린다. 그때의 그것이 나에겐 하이엔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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