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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되는 음.

지난,  동계올림픽의 개막식에서 ‘자니 미첼’의 ‘BORN SIDES NOW’의 음을 들었다.
맨 마지막 부분에 어린 소년이 나와서 황혼의 바람부는 대지를 날으는 장면이 그 곡이다.
음을 듣는다는 것이 단지, 음의 특성을 강조해 듣는 버릇에서 벗어나, TV의 음에서도 오랜만에 바람이 부는듯한 장면을 좋은 추억의 음으로 들을 수 있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음에 대한 생각이 바뀐다는 것이 어색하기도 하고, 사고의 전환일 수 있지만, 그러나 내가 듣기 싫은 소리는 여전히 듣기 싫다.
소리에 미칠 즈음, 내가 찬 손목시계 소리에 잠을 못이뤄, 시계를 장롱 이불에 넣고, 거실에서 잠을 잔 적도 있었다.
예민하지 못하면, 이 직업도 할 수 없겠지만, 주위 사람들도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나이가 든 것일까? 경험으로 안 것일까?   인간의 귀는 듣지 않으려 하면, 들리지 않는 놀라운 기능을 갖추고 있다.

90년대 초에 주로 읽은 책은 ‘법정스님’의 책들이다. ‘텅빈충만, / 산에는 꽃이피네, / 맑고 향기롭게, /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 물소리 바람소리…..읽은 책들은 제자들에게 읽어 보라고 주었었다.
그런데 ‘무소유’의 책이 100만원이란다. 참 듣기 싫은 소리다.

3월 초순, 평창의 한옥을 보러 갈 기회가 있었다.
작은 소리에 귀기울여 보니, 얼음 밑으로 쉴새 없이 개울의 물소리와 말라 있는듯 보이지만, 움 트고자하는 나무들의 소리가 들려 왔다.
소리를 마음으로 듣는 것이 가장 좋다는 글귀가 맞다며, 산을 오르내렸다.
산에는 돌풍이 불어 수령이 족히 되어 보이는 소나무들이  뿌리까지 뽑혀 있었다.
그러다가 토종의 ‘자작나무’가 은비늘을 두루고 솔밭사이로 반짝이고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 왔다.
가까이서 그 비늘은 바람에 야릇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초롱’의 꽃은 종소리가 나고, 이 ‘자작나무’의 느낌은 청아한 금관악기의 음이 들렸다.
북유럽의 ‘자작 나무’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돌아온 후, 사무실에서 그 나무의 사진을 보고, ‘자니 미첼’의 음을 다시 들었다.
바람………. 돌과 잡목, 바위와 언덕. 나에게는 평창에서의 하루가 기억되는 음이다.

700M의  산비탈에서 소나무/  자작나무 Nikon 18-70mm  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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